작성일 : 13-07-0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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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창] 성별케 함 - 리타 베네트 사모 / 이명숙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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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케 함 리타 베네트 사모 / 이명숙 정리
구원과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구하는 자가 누구든지 하느님께로부터 값없이 받는 것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가 하느님이 우리에게 받아들이도록 제 안하신 것이라면 이번에는 우리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성화이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성별된) 산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12:1) 바울은 여기서 ‘형제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분명 구원을 받고 성령 세례를 받은 신자들을 말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일단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의 구원은 날마다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는 순간은 특별한 한 번의 일이지만 성령을 우리 안에 채우기 위해서는 매일 성 령을 허락해야 한다. 바로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롭고 성결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받았 지만 성화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전하며 승 리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 된다.
성화는 예수님과 매일 동행하기를 결심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첫 번째에 두며 그의 길을 걷는 것이다. 곧 자기가 원하는 곳에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직후에는 하느님의 임재가 매우 실제적이어서 하느님을 첫자리에 두 는 힘든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그의 새로워진 영은 지휘자 자리에 있고, 혼과 육은 그 지 시에 따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바로 혼은 이전의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새로워 진 영과 겨루기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영과 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이들의 차이 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배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람은 영, 혼, 육의 세부분으로 되어있다.
영은 하느님과 교제를 가지도록 창조된 우리의 가장 깊숙한 내부이다. 이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 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다시 살아났고, 거기에는 하느님이 오셔서 거하시며, 그분의 뜻을 알고 증거하는 장소이다.(골로2:9-10, 요한14:23,14:16, 고린1 6:17)
혼은 인간 타락이후 지배해온 부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선과 악으로 섞여있 다. 비록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그의 찌꺼기는 여전히 우리 혼속에 남아 있다. 그것을 청소하는 작업을 성경적인 용어로 하자면 성화라고 한다. 이 영역은 실감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곳은 곧 예수께서 우리에게 부인하라고 명령하신 ‘자아’의 영역이다.
육은 혼과 영이 거하는 집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된다. 하느님은 우리 육체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가 그분의 성전 됨을 인식하고 성령의 독려에 순종할 때 그 계획은 실행될 것이며 하느님의 영광이 넘쳐흐르게 된다.
하느님은 당신의 혼이 잘됨같이 당신이 범사에 강건하기를 원하신다.(요한Ⅱ 1:2) 성경의 연구와 적용 을 통해서 혼과 영의 차이를 이해해 본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왜 성경은 우리에게 혼과 영을 구분하거나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이미 언 급 했듯이 혼은 여전히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혼합체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혼 안에서 걷거나 그 가운 데 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거듭 강조하면서 ‘영 안에서 걸으라’ ‘영 가운데 거하라’ ‘영으로 기도하라’ ‘영으로 노래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은 하느님의 영에 종속된 채로 영 안에서 걷는 것을 배울 때만이 깨끗해지고 올바르게 되고 치료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진다.
혼은 지성, 의지, 감정의 세부분으로 되어있다.
우리의 지성은 성령의 일에 가장 복종하기 힘든 영역 중 하나이다. 인간 최초로 범죄했을 때, 하느님 이 금하시는 영역까지 지성이 범하고자 했을 때,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창 3:5) 그때 이후 로 인간은 타락한 지성의 이론으로 살아왔다. 사탄은 우리의 지성을 가지고 농락할 것이다. 선과 악, 참과 거짓으로 축적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은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변화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의지는 혼의 중추부분이고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또한 자아의 본질로서 이제까지 하느님의 의지대신에 자아의 의지로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의지를 날마다 그 분께 기꺼이 돌려드림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그에게 보일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성화다. 하느님은 자녀들의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신다. 감정은 혼의 느낌으로서 의지가 이것을 다스린다. 감정은 의존할 만한 것이 못되며 우리 생활이 이것에 지배받아서는 안 된다. 감정도 선과 악의 복합체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감정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감정부분을 새롭게 해주셔 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이 아직 성화되지 못했다면 그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가 동의 해햐 하고, 그랬을 때 성화의 깊이를 더해가므로 우리 혼이 안정속에 정착한다. 히브리서 4장이 혼과 영을 가르 거나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기 직전에 하느님의 안식에 대해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혼 가운 데 거하는 대신 영 가운데 거하는 것을 택하면 이 안식을 누리게 된다. 성령세례는 영에 안식을 넘 쳐나게 하여 혼의 안식을 가져다 준다.(이사 28:11-12, 마태 11:28)
우리가 우리를 다스리는 권리를 가진 혼을 부인하는 법을 배우고 혼과 영이 주께 복종하며 그 안식 에서 걸을 때 하느님은 우리 삶을 영원히 가 치있는 것들로만 채우실 것이다.
오순절 날 시작했던 물결이 계속 흐르도록 하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나타 나며, 그리스도의 감정이 우리를 통해 흐르며, 그리스도의 의지가 우리에 의해 행해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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