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5-2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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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다시 얻은 생명 - 함 혁(현 수사님) / 김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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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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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얻은 생명 - 함 혁(현 수사님) / 김갑한
병원에 누어있는 내 모습을 처음으로 인식했을 때 그 충격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사고가 어떻게 발생되었으며 내가 왜 이곳에 누어있는지 병원에서의 많은 시간들 속에 난 어떤 모습이었는지 내 기 억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퇴원하기 몇주전 것만 어렴풋이 생각날 뿐, 난 그런 일시적 기억 상실 증에 약간의 두려움을 안은 채 퇴원하게 되었고 그 길로 군대는 제대하게 되었다.
부모님께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1월 25일 훈련받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급하게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중환자실에서 꽤 오랫동안 무의식상태로 있었다한다. 퇴원하기 전까 지 두 번의 대 수술을 했고 지금은 회복단계에 있는 거라 하셨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하지만 그동 안 저를 위해 눈물로 애통해 하셨을 부모님과 많은 교우님들 친지들 동료와 형제들의 노고를 짐작해 봄직하다. 듣기론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다. 하지만 처음엔 그 수를 어림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수가 엄청나서 군병원에서 나에 대한 조사까지 했었다 하니 알만 하지 않은가 싶다. 제가 알지 못 하는 분들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주신 분들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생 명의 위기에 놓여 있는 아들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의 눈물을 흘리신 부모님께 형용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 지금은 이렇듯 감사의 생활을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비롯하 여 주위 많은 분들이 “이렇게 건강해 지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리 지만 실상 나 자신은 무엇이 감사한가?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의 문이 떠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내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 순간엔가 풀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내가 ‘살아있음’이었다.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선생님은 수술을 해도 20%밖에는 살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난 지금 생명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거동하는 문제도 80%는 자유롭다. 이것이 감사할 수밖에 없 는 첫째 조건이 아니겠는가? 전에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그 행동을 기뻐하시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에 주님이 참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에 도구로 사용될 뿐임을 그리고 그 도구로 내가 선택된 것에 감사를 드린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길 기도하 고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언제나 내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모든 것 준비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고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면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과 소외된 우리 이웃을 위해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감사를 통한 하느님의 역사 - 로렌스의 모친
1996년 1월 25일 저녁 7시, “따르릉 따르릉” “네 여보세요” “여긴 부댄데요 함 상병이 훈련 갔다 귀대하는 길에 차가 전복하여 다쳤습니다.” “여보세요. 의식은 있어요?” “없습니다. 찰칵” 수화기를 놓는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해야만 했다. “주님! 감사할 수 없지만 감사할께요. 주님께서 저를 시험하시는 거지요?” 불과 몇 시간 전 어머니임원회에서 말씀을 해달라는 회장님의 부탁에 다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어느 유명목사님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제목의 말씀 중 ‘내가 살아 있음에, 가족의 건강함에, 작은 일에도, 즉시 감사하라’는 강론에 깊은 감동과 은혜가 되었던 부분들을 전했는데…. 병원에 도착해보니 의식이 없는 로렌스는 자고 있는 듯 약간의 타박상 이외는 다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의사의 말은 뇌의 출혈과 경추(목뼈) 7개중 6개가 다 부러져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었 습니다. “안돼요. 주님 우리 혁이는 안돼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부르짖을 때, 내머리 속에는 오늘 낮에 전했던 말씀이 생각나 분명한 뜻이 있을 거라는 믿음과 생명만 구해 주시면 이 아이의 모든 것 을 내가 감당하겠습니다, 하며 마음이 정리되고 이상하리만치 냉정해 질 수가 있었습니다. 왜? 우리 로렌스가 수사를 열망했으며 얼마 전 나는 왜 간병인 교육을 받았을까? 왜 오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전했을까? 분명한 주님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온 가족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피땀 흘리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의사는 여전히 냉정했고 연락을 받 고 오신 신부님과 교우들의 끊이지 않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오늘이 고비라며 뇌를 치료(약물투여)하는데 뇌압이 올라가면 위험하다며 의식 없이 덜덜 떠는 아이를 벌거벗겨 놓은 채 얼음주머니를 몸에 대어놓고 있는 모습은 불쌍하고 애처러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뇌압을 내려주세요. 뇌압이 오르면 죽는대요. 살려 주세요”기도하였고, 군부 대에서는 만약의 문제를 놓고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이렇게 ‘생과 사’ 의 문제를 의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4일째 되는 날 뇌압이 떨어져 치료를 시작한다는 말에 우리 가 족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표정 하나에 희비가 엇갈 리며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 면회가 안되는 시간은 로렌스의 침대가 있는 벽을 붙잡고 밤낮없이 기도했고 지치고 힘들까봐 많은 교우들이 함께 밤을 새워주는 사랑은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이 되어 주 었는지…. 드디어 8일째 되는 날, 로렌스의 감긴 눈이 파르르 떠는 움직임이 있었고 우리 모두는 또 한 번의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순간에 아이를 잠재울까 두려워 화장실도 교대로 가며 애태 우 던 우리는 통합병원 후문에 방을 얻었습니다. 2월 16일 첫 번 신경수술 날짜가 잡혔고 교회식구들은 교회를 비우지 않고 하는 릴레이 기도가 시작되었고 각 교회에서는 미사의향에 또 기도모임이 있을 때 마다 기도해주신 덕분에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된 수술은 오후 3시 30분에 성공적으로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주교님을 비롯하여 많은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 교우들, 친 구, 선후배, 군 동료, 교수님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도로 물질로 베풀어준 사랑은 우리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갚는다 해도 못 갚을 것입니다. 하루에 5번 있는 면회시 간 때마다 20~30명씩 들어갔으며 그래도 들어갈 수 없었던 분들은 복도에 빙둘러서서 기도했습니다
‘예수사랑 할머님’들은 간호하는 사람들이 지치면 안 된다고 불고기에 만두를 손수 빚어 오셨고 칼국 수, 오곡밥, 나물 등 반찬이며 밥이며 전해주신 위로금 모두가 차고 넘쳐 우리는 병원에 있었지만 생 활은 늘 감격하고 감동하며 신문지를 깔아놓고 먹는 식탁은 언제나 사람도 음식도 풍성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관대 그렇게 많은 분들이 염려해 주시며 기도로 사랑을 퍼부어 주시는지 주님의 사랑 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월 18일 로렌스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야” “혁아 알아 보겠니?”감격의 기쁨과 눈물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갖게 했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며 손가락부터 아픔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고통이 너무나 심해 팔, 다 리를 다 묶고도 몸부림을 감당치 못해 가슴까지 묶여 기를 쓰는 고통은 우리의 살을 저미는 아픔을 맛보게 했으며 더 이상 볼 수 없어 진통제라도 요구하면 군의관은 “기쁜 일인데 왜 그래요”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이 6시간이지만 이 아이는 몇 날을 더 아파해야 하는 겁니까?”하며 떼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몸의 뼈가 침대에 닿은 곳마다 욕창이 난 듯 벗겨져 피가 흐르고 숨이 끊어질 듯 하는 고통을 바라볼 수가 없어 외면한 채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3월 4일 2차 수술(경추)은 사고 때 받은 충격으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해 미루어지면서 우리 모두를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 다. 하루 단 20분을 자지 못하는 로렌스는 엉뚱한 소리에 욕을 하며 기도하는 것을 거부하며 정신없 는 생활을 40여일동안 하였습니다. 그때 윤애 형님이 교대하며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견디었습 을지 그래도 기적을 주신 하느님이 감사했고 로렌스가 장하고 대견했으며 의사선생님이 고마웠습니다 다. 경추 하나만 부러져도 하체를 못 쓰고 휠체어 타고 다니는 환자가 허다한데 로렌스는 6대가 부러 졌고 39군데가 금이 갔는데도 팔다리 움직이며 힘도 좋았습니다. 의사와 간호장교들은 기적의 사나이 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후에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렇게 다친 환자는 처음 보았고 어떻게 치료할지를 몰라 3일간 그냥 방치해 두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생기고 해보겠다는 용기가 나서 외국 각 의학계에 도움을 청한 결과 스칸디나비아에서 로렌스와 같은 환자를 수술로 성공했다는 사례를 전해 듣고 자료를 받아 공부해가며 수술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사례 또한 의학계에 발표할 것이라 는 말을 듣고 정말 하느님이 개입하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수술 후 통증도 차츰 떨어지고 기억력도 회복되며 제정신이 들어 기도하며 걸음마도 배우고 글 쓰는 연습도 하는데 회복이 빨라 물 리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도 사양하고 주님의 완전하신 손길에 의탁하며 105일의 병 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천후란시스 형제의 집에서 베풀어주신 치유감사 기도회와 박 안드레 신부님의 입회식에도 다녀왔습니다. 아직 얼마간의 시간은 필요하지만 건강해진 로렌스의 모 습에 보는 사람들마다 놀라며 감사해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흐믓 하게 합니다. 지면을 통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우리 온 가족은 주님 도구로써 열심히 살기를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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