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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04 00:23
[지식의 창]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Walter. Brueggemann의 The Bible Makes Sense 중에서 발췌 / 이명숙 정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137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Walter. Brueggemann의
                                            The Bible Makes Sense 중에서 발췌 / 이명숙정리



성서를 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성서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서를 접근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대로 성서를 대한다면 성서의 본래적 성격에 충실할 뿐 아니라, 교회의 신앙과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성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대한 의미를 주며 시대를 초월해서 변치 않고 존재하는 동일한 진리를 전해준다. 성서의 하느님은 인간의 종교적 관념과 사색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를 이끄시며 그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시며, 인간과는 실존적인 대화 관계 안에 현존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문제는 구세의 주체자이신 하느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실 때 그 찾으시는 인간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성서의 관심이요 주요 강조점이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속성과 목적이 무엇이며 인간의 본성과 운명이 어떠한가를 이해하게 해 준다)

  ▲ 성서는 우리에게 인류역사와 운명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보증된 말을 해 준다. 그 답은 하느님은 자신을 내어주는 자비로운 분이며, 또한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권한을 지닌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서의 핵심 증언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제기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며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그래서 성서는 가끔 해답집이나 불안감을 없애주는 대상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그 외에 행운의 부적정도로 여겨지기도 하고 성물로 취급되어 그 위에 서약을 하기도 하며 행동규범을 알려주는 지침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런 여러가지 태도는 역사적 실존의 절실한 요구를 무시하고 어떤 규범을 세우려 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와 우리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성서는 올바른 윤리, 올바른 신심, 올바른 교리를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성서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하느님과 그 백성과의 성실한 관계, 공동체 안에서의 모든 형제 자매간의 관계, 그리고 하느님이 만든 세상과 공동체와의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절대로 규격화 하거나 공식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성서는 이미 결정된 분명하고 확실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적이며 결정되지 않은 신비스런 약속과 보증이 곧 성서의 관심대상이다. 성서는 이런 해답을 확실하게 이야기 해 주지 않는다. 다만 신뢰할 수 있는 기억, 역동적인 이미지, 결코 끝나지 않는 여정, 그리고 변치않는 충실한 음성을 분명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성서는 매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새로운 차원의 헌신을 요구하며 새로운 차원의 신뢰를 촉구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를 더 대담하고 더 풍부한 신앙의 세계로 초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일종의 비판기능이 있어서 우리의 안일한 결정 신앙심 없는 자세, 그리고 자기 기만을 폭로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순간도 성서에 대해 안일 할 수 없고 이제는 성서의 요구를 다 했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에도 끝이 없는 것이다.

  ▲ 성서의 논리는 고백적이며 단정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없다. 성서는 하느님을 조사하지 않고 창조자임을 선포하며 창조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고찰하지 않고 하느님이 우리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그것이 역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교회의 역사를 조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선포한다. 이와같이 성서는 독자적이고도 독특하며 교회의 교리나 학문과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성서를 대하는 데는 신앙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증명에 바탕을 둔 책이 아니라, 용기와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증명하는 태도로 증언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는 태도로 증언하고 있다.
  인간 세상의 어떤 다른 표준과 학문으로도 성서가 지닌 권위와 생명력을 무력하게 할 수는 없다. 성서의 핵심은 곧 선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논의될 수도 증명될 수도 없는 것이며 단지 신앙의 근본원칙으로 선포될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 타당성을 따져봄으로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서 들려오는 신앙의 음성을 수용하겠다는 신앙적 결단에 의해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이 첫번째 결단 없이는 진지하게 성서를 대할 수 없다.

  ▲ 성서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대화의 상대자이다. 성서를 읽는 데는 주관적 또는 객관적인 모든 기존의 인식 방법들을 버리는 자세가 요구된다. 다시 말해 성서가 인간에 의해 다루어지고 분석되고 연구 및 해석되어 질 수 있는 한권의 책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성서는 계속해서 살아있으며, 우리 안에 용솟음치고 있는 변치 않는 하느님의 진리라고 생각하면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그 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본문 자체가 우리를 수 없이 놀라게 만들 것이며 또한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성서 본문에 의해 해석 당한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성서는 죽어 있는 물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 상대자로써 그 자체가 우리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 또한 성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대상이기도 한다. (내가 누구이며 내게 제기되는 현재의 질문이 무엇이며, 미래에 내게 주어진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들어야 한다)

  ▲ 성서는 놀랄 만큼 뚜렷한 방향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신앙 안에서 살고자 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많은 진리가 담겨져 있다. 그 내용이 너무 풍부해서 우리 힘으로는 분류나 축소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분명히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엡4:5-6).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구약도 신약도 이점에선 일치한다. 그래서 성서를 단편적으로 나누어 보게 되면 핵심이 되는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성서는 예측할 수 없이 풍부한 소재가 다양하게 사용되면서도 분명하고 일관성 있게 한 가지 방향을 지니고 있다.

  ▲ 성서는 인생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해주는 렌즈이다. 참으로 성서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은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 때문에 전적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의식구조를 갖게 된다. 그 핵심 메시지란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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