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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16 15:57
[강론] 예수의 유일성 - 죤 스토트 신부
 글쓴이 : 이명숙
조회 : 1,753  
강론( 대학로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죤 스토트신부 / 복원경정리

  지금 세계에는 다른 종류의 많은 종교가 있고 인간사회가 점차적으로 다원화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현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 그대로 어디서나 다른 종교와의 만남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비교 종교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친숙하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우리사회의 모든 국면에 적용되어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상대성이라는 정신’이 보편적 경향이다.
따라서 관용이 가장 큰 미덕으로 간주되며 ‘지적관용’은 원리가 없는 혼돈으로 빠져 선을 악으로, 진리를 비진리로 혼돈까지 한다.
여기에 현대사회는 전적인 지적관용은 불가피하므로, 여러 종교를 융합하여 보편적 종교를 창출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가 유일하다는 것과 우월하다는 생각을 포기하 라고 요구하며 우리로 하여금 다원주의를 수용하고 세계선교를
포기하라고 촉구한다.
오늘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장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다. 기독교의 유일성도 아니고 기독교 신앙의 유일성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체다.
예수님은 종교적 지도자 차원에서 생각되어서도 안되며, 물론 경쟁자나 후계자도 없는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호칭은 다양하다.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도, 주(the Lord), 등등… 총체적인 타이틀은 벧후 3:18에서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은 ‘우리의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세 가지는
첫째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는 것이고,
둘째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셋째 예수님이 우리들의 구주라는 것이다.
  설명을 하면 첫째로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신앙 고백을 할 때 주님이라는 호칭은 야훼 하느님의 호칭으로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바울이 빌 2:9-11 부분에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아주 높이셔서 모든 이름을 그 아래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가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셨다
고 말할 때 예수님의 호칭은 하느님 호칭과 같은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사야 45:23에서 하느님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본문을 예수님께도 적용하였으며, 예수님께 하느님에 해당하는 경배(무릎을 꿇는다는 것이
곧 경배를 의미)를 요구하였다. 만일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신약에서 지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논증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그 당시 교회에서는 논쟁할 필요가 없는, 이미 보편적인 진리였기 때문이다.
불교는 부처가 죽은 500년이 지난 후에야 신적 위치로 격상됐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초대교회 당시부터 주(the Lord)라 불리었다.
  둘째로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의 설명은 신적 주가 신적 구세주로서 기독교는 죄로부터 구출된다는 구원의 좋은 소식이다.
구원이란 자유를 말하는데 우리의 죄에 대한 공정한 심판으로부터의 자유, 죄와 죄책감으로 부터의 자유, 무의미의 굴레로 부터의 자유,
나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어두운 감옥으로 부터의 자유이며, 어느 날인가는 고통과 썩음과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죽으신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무죄한 인격 속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이 속죄의 대속성이 복음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
이것이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작업의 시작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를 통한 새로운 시작이며 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하실 것이다.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성육신설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속죄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은혜로운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갖고 죄인들을 구출하러 오셨다는 것은 유일한 것이다.
  셋째로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다’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자시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다.
현재도 살아서 나와 인격적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는 개인적(인격적)으로 안다고 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모하멧에게 계시된 계시 측면만 얘기하고, 부처가 설명한 원리들을 따라가는 것이 불교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밀착하여 그분을 우리의 주와 구세주로 고백 하는것이 다.
기독교 선교의 포용성은 기독교의 배타성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민족에게 보냄을 받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성과 유일성에 대한 신약의 교훈을 우리는 추종해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한 하느님, 한 중보자만 계시다. 어떤 다른 것에도 구원은 없다. 단 하나의 이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일반적인 결론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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