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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예배 | 변혁의 시대와 성령운동 | 유교적 전통제사 |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기(氣) | 뉴에이지(new age) 운동


▶▶▶ 뉴 에이지(new age:새시대)운동 ◀◀◀



‘뉴에이지 운동’을 간단히 설명하면 현대의 문명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통해서 새시대를 건설하자는 사상지향적인 각종 운동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처음부터 특정한 종교나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아니며 시대적 상황에서 발생한 반문화 운동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따라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어떻게 반문화운동이 뉴에이지 운동으로 전환되었으며, 뉴에이지 운동 속에 숨어 있는 사탄의 전략과 거기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은 무엇인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뉴에이지 운동을 경계하고 주시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시대적 배경

20세기에 들어와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전속도에 비해 인간의 삶을 바로 이끌어줄 정신문명의 발전속도는 현저히 뒤떨어져 있었다. 인간이 물질문명을 주도적으로 이용하여 풍요로움을 누리는 주체가 아니라 기계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는 노예신분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기존의 문화는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고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더구나 서구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기독교도 서서히 물질문명의 그림자에 가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속에서 60년대에 들어와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반문화운동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히피족들과 대중가요의 선풍이었다.(영국의 비틀즈) 미국의 밥딜런 등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기존의 가치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들이 보기에 신비한 정신적 세계를 가지고 있는 동양은 물질문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비한 현상 ─ 심령술, 원시종교, 엑소시즘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던 그들에게 그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핵 전쟁과 생태 질서의 파괴로 인한 공포가 일어났으며 그릇된 종말관은 종말이 다가 온다는 일반적인 신앙으로 대중들의 생각에 고루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뉴에이지운동가들은 암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희망과 낙관주의를 제시하였고 사상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반문화운동을 뉴에이지운동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2)뉴에이지 사상

뉴에이지 운동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기존의 사상들이 필요에 따라 적절히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동양사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뉴에이지운동을 주도한 것이 서구인이기 때문에 서구문명의 사상적 근간이된 기독교사상과 서구전래의 샤머니즘적 전통도 융해 결합 되어있다.


뉴에이지 운동의 뿌리는 인본주의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발전한 인본주의는 르네상스시대까지만 해도 인간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 하였을 뿐, 하느님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인본주의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주의를 토대로 한 인본주의는 하느님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세속적 인본주의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뉴에이지운동의 중심에는 인간의 확장된 의식을 통하여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앙이 있다.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과 같게 되려는 것”이 명백하게도 사탄에 의한 것임을 성서를 통하여(창 3:4-5)알 수 있으며 실제로 뉴에이져들 중에는 공개 적으로 사탄을 경배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뉴에이지운동의 영적 기원은 고대로 부터 내려왔으며 새 시대,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기독교신앙을 전면 부정하자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3) 사탄의 의도와 뉴에이지 운동의 유형

뉴에이지운동을 통해서 인류를 하느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것과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된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에 집결시킴으로써 기독교를 세속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사탄의 의도이다.


첫번째 유형은 우리의 삶속에서 접근하기 쉽고 구체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나 사탄의 의도를 담은 영화, 음악, 서적, 만화같은 대중매체이다. 이러한 매체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구원의 개념을 바꾸어 주는 메시지가 있는데 이러한 메시지에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과 상관없는 신의 개념과 예수님 없는 구원의 개념을 수용하게 된다.


두번째 유형은 요가 명상 마인드 콘트롤 강신술 최면술등 동양신비주의 종교에서 도입된 심령술이다. 이러한 심령술은 직접 체험할 때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신의 힘을 느낀 것 처럼 착각하게 되고 잘못된 자신감을 터득하게 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
사람들은 UFO의 이야기를 하고 귀신출몰, 신비적인 사건들, 영매작용, ESP(초감각적 지각) 등에 매료 되었다. 뉴에이지 운동 조직들의 프로그램들은 건강한 생활에 관한 주제를 겉으로 자주 다루면서 사회각층에 침투하여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고차원적 전술전략이 뉴에이지운동에 숨어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영적싸움의 대상이라고 여겨진다.


4) 교회내의 뉴에이지적 요소들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 역시 적극적인 삶의 태도와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강단에서의 말씀선포도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주창되었다. 우리가 분명히 분별하여 짚고 넘어갈 것은 신앙과 신념의 구분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푯대로 바라보는 믿음으로서의 신앙이며 인간의 지혜로서 생각하고 정신통일하여 힘을 얻는 신념이 아니다. 신앙이 아니고 신념에 기초한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사고 방식이 교회안에서 강조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중심적이 될 수 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만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분별할 수 있는 힘, 성령의 힘을 덧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리고자 하는 요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산재해 있다. 사랑이나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복음으로 시작하여 구원은 기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다원주의, 종교간의 대화와 통합에 동참해야 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신학과 같은 종교 통합주의가 교회내로 침투해 올때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에 빠지고 세속화 된다. 교회의 본래 목적인 죄의 구속사업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교회는 뉴에이지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5) 기독교적 대안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넓혀 가야 한다.


둘째: 일상적인 삶속에서의 ‘영적 실재’를 인정하고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세상의 영’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기 때문에(고전 2:13) 이 마지막시대에는 더욱 더 ‘영분별의 은사’를 간구토록 하여야 한다.


셋째: 뉴에이지 성격을 띤 문화와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독교문화가 개발되어야 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야 한다. 이것이 뉴에이지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뉴에이지운동이 아무리 막강하게 전세계에 퍼져 있더라도 그들은 결국 패망할 것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꺾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기독교인이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미혹의 영들에게 속아 하느님의 심판아래로 빠져 들어가는 영혼들을 구하려는 사명감을 갖는 일 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으로 사회 모든 전문분야에 참여하여 그들의 맹목적이고 근거없는 신념이 허상이라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답게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 뉴에이지 영상매체의 위험 ◀◀◀



유명한 예술사회학자인 아놀드 하우저는 20세기의 가장 유망한 예술 분야로 영화를 꼽았었다.

이와같이 오늘날 명실상부하게 문화의 꽃으로 각광받는 영화가 때로는 현대인에게 뉴에이지 정신을 피력하고 주입시키는 데 이용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뉴에이지가 하나의 종교임에도 종교 형태를 띠기 보다는 문화의 형태로 다가오기 때문에 영혼의 오염에 대해 실감하기가 어렵다. 뉴에이지 영상매체의 위험을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취향이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TV의 광고가 우리의 잠재의식을 침범하여 무의식세계에다 메시지를 집어 넣은 결과 우리의 행동까지 바꾸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가선용을 위해 대중문화를 선택할 때 그 점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가운데 ‘엑소시스트’ 만큼 충격적인 잠재의식 수법을 써서 효과를 거둔 작품은 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영향받은 사람 가운데 극도의 히스테리 현상을 보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본 어떤 사람은 악의 형상을 평생 기억 속에 간직하며 살지도 모른다.

또한 어떤 영화는 많은 복선과 상징수법을 써 영화 보기에 훈련이 안된 크리스천은 겉만 보고 속아 넘어 가기가 쉽다.

‘흐르는 강물처럼’ 같은 영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시골정경은 현대 도시인에게는 아름답다 못해 원시적 자연에로의 삶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줄거리 전개를 기독교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음도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색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에 우리 마음의 심연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건 전개를 통해 보는 이들이 서서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을 잃기 시작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는 불안이 고개를 들며 점점 커지지 않은가?



연출자는 삶의 궁극이 허무라는 메시지를 아름다운 자연과 기독교적인 분위기의 위장 속에 지뢰처럼 파 놓은 것이다.

무엇보다 뉴에이지 영상매체는 이성 보다는 감정에 믿음 보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연말에 국내에서 개봉될 흡혈귀를 다룬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가높다. 이는 미국에서 한남자가 이 영화를 관람한 다음날 진짜 사람의 피를 빨아 먹으려 자기 애인을 칼로 찔렀다는 소식이 도보 됐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흡혈후 체포돼 ‘영화에 감화를 받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폭력물 비디오를 보고 행동으로 옮겼던 끔찍스런 사건들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비디오에 의해 모방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분노나 불화, 사랑의 결핍이나 가정의 문제등이 쌓여 있다가 매개 역활을 하는 비디오나 영화같은 대중문화속의 인물에 빠져들어 자기와의 구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이와는 달리 병든 이에게는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잠재되어 있던 분노나 미움 등이 표출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나 교회, 가정은 억압된 감정을 풀고 발산시킬 수 있는 건전한 대중문화의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할 책임에 적극적이어야 겠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에게 뉴에이지 문화가 극단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기도를 방해하고 가족의 대화를 가로막고 영적인 분별력을 흐리게 할 것이다. 뉴에이지 영상매체는 제대로 분별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이 없을 때 모방효과는 크므로 취사선택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홍수같이 쏟아져 나올 뉴에이지 영화를 구별하는 기준과 대표적인 뉴에이지 영화를 정리해 보았다. 요즈음에는 사탄을 상징하는 파충류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접근해 오고 있다. 이런 영화들은 흉칙한 괴물들을 선한 존재로 부각시킴으로써 타락한 인간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한다.



또 하느님의 역할을 대행하게 하거나 선악의 개념에 대한 혼란, 인간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지음받은 동물의 역활변경등 한마디로 성경적 세계관을 가져야 할 영혼의 빛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엘리베이터·V(브이)·닌자거북이·아기공룡둘리·ET·쥬라기공원 등이 있다.

성령이 아닌 어떤 영혼과 만남을 시도하는 영화는 모두 뉴에이지 영화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과 영혼· 영혼의 목걸이 등이 있다.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하되 다른 내용을 다룬 영화인‘레이더스’에서는 하느님의 법궤에서 악령이 나오게 하였으며 ‘오멘’에서는 계시록의 666을 오히려 사탄이 승리하는 쪽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몬트리올 예수 같은 영화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왜곡시킨 영화들이다. ‘미녀와 야수’같은 영화는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인간이나 다른 신이 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영화이다.



※ 참고자료 :
....................최후의 유혹(신상언 저),
....................낮은 울타리 11호,
....................국민일보

* 참고로 ‘크리스천 영상문화 모임’에서 추천한 우수 비디오를 소개한다.

⊙ 아벨론·성의·내사랑스누피 · 사랑의 하모니·'굿바이 마이달링·'티모시허튼의 허수아비·베토벤·글렌 크로즈의 가족·쟌다크·솔로몬의 딸·폴뉴만의 심판·폭풍을 헤치고·벤크스톤가의 아이들·아틀란틱의 꿈· 남북전쟁·롱워크홈·미시시피 버닝·기원·닥터·크리스토퍼 콜롬버스 ·카인의 반항·대니으 질투·파엔드 어웨이 ·콘랙·에이미·아담의 영혼·테리와 제리·져니오브하트·알란과 나오미·빙고·불의 전차·바람에 대항안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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